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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 KLEIN, 1929~ , US

· photographer

윌리엄 클라인 청년 시절 - 그는 한때 페르낭 레제의 제자로 미술을 공부했다. 페르낭 레제는 현대 물질 문명에 대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사회주의자였다. 그러나 레제가 기계문명을 비교적 긍정적으로 바라본 것에 비해서 윌리엄 클라인은 물질문명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졌다.

도시의 이방인으로 현대의 얼굴을 담은 사진 작가

  
"스냅 촬영을 생명으로 하면서 셔터 찬스를 절대 우선주의로 했다. 때문에 초점이 맞고 안맞고, 구도나 노출의 과부족 같은 기술적인 것에도 구애받지 않았다. 즉, 대상과 사진기를 적극적으로 결부시키는 데에 그의 독자적인 영상미학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사진작가 윌리엄 클라인(William Klein)을 생각하면 먼저 조세희 선생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떠오르고, 그 연작들 중 하나인 「클라인씨의 병(甁)」이 다시 떠오른다. 사진작가 윌리엄 클라인을 찾아가는 길은 늘 이렇게 멀리 돌아서 가게 된다. '클라인씨의 병'이란 것은 뫼비우스의 띠와 함께 실제 우리가 살고 있는 3차원의 세계에는 존재할 수 없는 공간이지만 그냥 그림으로 보면 또 나름대로 납득이 가능한 것이다. 밖에서 밖으로 연결되는 안과 밖이 구분되지 않는 공간. 한 영혼에 깃든 두 개의 육신 혹은 하나의 영혼으로 지배되는 두 개의 육신과 같다. 윌리엄 클라인의 사진 세계에 대한 탐구는 나에게 있어서는 그래서 다분히 수학적인 탐구이자 안이 곧 밖이고 밖이 곧 안인 세계로의 탐구를 의미하는 것이 된다. 우리는 윌리엄 클라인의 사진을 일상에서 벌어지는 한 풍경 속에서 아주 흔하게 보았을 수도 있고, 처음 보는 강렬한 인상에 휩싸일 수도 있다. 윌리엄 클라인의 매력은 거기에 있는 것이다. 일상(日常)의 강렬한 낯설음!
사진계의 반항아이자 이방인이었던 윌리엄 클라인
윌리엄 클라인은 20세기 후반 대표적인 사진가의 한 사람으로 그가 활동한 영역은 사진에만 그치지 않고 그림, 조각, 무대 미술, 영화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시각적 표현을 위해서는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넘나들었다. 그는 뉴욕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사회과학을 전공했다. 클라인은 사회학도였으나 화가가 되고 싶어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후 18세 때 군에 입대하여 유럽전선에 배속되었고, 중동전에 참전했다가 파리에서 제대하였다.
   
윌리엄 클라인은 평소 그림을 좋아하고 있었기 때문에 1948년 입체주의 회화의 거장 페르낭 레제(Fernand Leger)에게 사사했는데 이때 그의 스승인 레제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로 변모해 가는 과정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1950년대 초부터 추상작업을 위해서 사진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청년 화가 시절 윌리엄 클라인은 인상파, 세잔, 피카소를 좋아했다. 그는 레제의 작업에서 현대의 차가운 기술 공학을 받아들였고, 이탈리아 르네상스 전기의 조형적 건축에서는 그 차분함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사진 분야에서는 농업안정국과 루이스 하인, 특히 워커 에반스의 직설적인 도큐멘트를 좋아했다. 그러나 50년대 유럽 사진의 감정적, 시적 조류는 좋아하지 않았다.(이 대목에서 나는 윌리엄 클라인이 전후 미국의 당당한 자신감의 표현이었던 프래그머티즘적인 요소들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윌리엄 클라인이 처음 사진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회화 작업의 연장으로 추상적 사진을 시도했는데 나중에 이 작품들을 모아 뉴욕에서 개인전을 개최한다. 그는 결국 사진가가 되었고, 사진으로 명성을 얻었지만 그렇다고 사진 작업에만 시종일관 매달렸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보그>지에서 활약하는 패션 사진가이자, 영화 <지하철의 아이>에 작품이 등장할 만큼 전위적인 화가였고, 미술 디자인 잡지 <돔스>의 표지 디자인을 했고, 개인영화도 몇 편 만들었던 영화감독이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조각, 무대미술 등등 자기 자신과 자기 사상을 표현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되는 모든 것을 자유롭게 선택했다.
그의 재능은 시각적인 표현이 미치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일하는 일종의 종합예술가였다. 또한 그는 미국에서 태어났으나 프랑스나 스위스 등에서 활약하는 유럽의 현대예술가로서(즉, 미국의 이방인으로서) 고향인 인공의 도시 뉴욕을 촬영했다. 그는 파리에서 8년만인 1955년에 뉴욕으로 돌아와서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에게서 물려받은 라이카 카메라를 가지고 뉴욕 거리를 찍었다. 그는 라이카로 작업한 사진들을 선별해 1956년 파리에서 프랑스 사진가인 크리스 마커의 도움으로 쇠유 출판사에서 <New York>이라는 작품집을 프랑스어판과 영어판으로 출판했다. 그의 첫 사진집 <New York>은 출판과 함께 찬사와 비판을 한 몸에 받았다.
그의 작품들은 이전까지 사진 작품에 대한 상식들을 깨뜨리는 것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작품들은 이전까지 통용되던 소위 '잘된 사진'들의 통념을 과감히 깨뜨렸다. 그의 작품들은 초점이 흔들렸고, 과도하게 조작된 흑백 콘트라스트가 극명한 대조를 이루도록 촬영했다. 그 결과 윌리엄 클라인이 촬영한 작품들에서는 디테일한 부분들은 과감히 생략되었고, 사진의 입자들은 거칠어졌지만 평면인 사진 인화지에 다른 이들의 작품에서는 쉽게 발견할 수 없는 깊이를 얻어냈다. 그의 작품들에서는 빛이 어디에서 쏟아져 들어오는지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는 인화지에 광원의 흔적들을 남겨두었다. 그에게 애초부터 원근감이나 구도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이 보였다. 그러나 윌리엄 클라인은 그런 과격한 기법을 통해, 애초 사진이란 장르를 구성하는데 있어 중요한 요소들이라고 생각되었던 질서와 기법들을 파괴함으로써 도시(City) 뉴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데 성공한다. 아니, 어쩌면 그만의 도시로서 뉴욕을 재구성했는지 모른다.
  
Stranger in NewYork, 윌리엄 클라인
윌리엄 클라인의 작품들은 한눈에 보더라도 단도직입적이다. 그러나 막상 그의 작품들을 미음 속으로 스스로에게 해석하기 위해서는 어려움을 겪게 된다. 처음 사진이 등장할 무렵 회화 작가들은 사진이 현실을 재현하는데 좀더 우수한 매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으나 그에 따라 겪어야 할 혼란까지 익숙해지는데는 시간이 좀더 걸렸다. 사진 역시 비슷한 길을 겪게 된다. 그것은 TV라는 매체의 등장이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해내는 매체로 여겨졌던 사진과 그 정신에 입각한 포토 저널리즘은 TV의 등장과 함께 그 위상에 심각한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마가렛 버크 화이트 편 참조) TV의 놀라운 속보성과 영상매체로서의 생생한 현실감은 그때까지 가장 충실한 현실 재현 매체로서 사진의 위치를 위태롭게 했다. 그 결과 많은 포토 저널리스트들이 좀 더 극적인 영상을 연출하기 위해 애썼고, 그럴수록 현실은 사진으로부터 멀어져 갔다. 그러나 사진 이미지가 현실의 진실한 사본이 아닐 뿐만 아니라 주관적인 의도가 담긴 변형이라는 점이 밝혀짐에 따라 지금까지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다고 여겨지던 기록사진과 예술사진도 더 이상 다른 것이 아니었다.
윌리엄 클라인과 로버트 프랭크의 사진이 출발한 위치가 바로 거기였다. 로버트 프랭크와 윌리엄 클라인의 작업들은 사진이라는 매체 자체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그들의 작품 세계가 다른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된 까닭도 그것이었다. 로버트 프랭크와 윌리엄 클라인은 사진에 있어서 여러 이론들을 개입시키지 않고, 오직 사진 자체만을 문제삼게 했다. 그들이 주제를 다루는 방식이나 개성은 판이하게 달랐으나 사진을 각 작가의 삶과 뗄 수 없는 직접적인 체험에 밀착된 것으로 보고 있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었다. 그의 이런 사진 형식은 윌리엄 클라인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의 선배 사진작가 격인 위지(아더 펠리그)는 주로 도시에서 벌어지는 센세이션한 사건들을 현장에 도착해서 생생하게 촬영하고 누구보다 먼저 현상하고 인화하여 언론사에 팔아 넘겨 유명해진 인물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여기지 않았지만 위지의 자유분방하고 사건 현장을 직설적으로 담아낸 이미지들은 불손하며 심지어는 천박해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랄했다. 그의 직설적이고 신랄한 이미지들은 다이안 아버스를 거쳐 윌리엄 클라인에게 이어진다.
도시가 지닌 음험한 미소를 그려낸 화가 - 윌리엄 클라인
로버트 프랭크와 마찬가지로 윌리엄 클라인도 "인생만큼이나 불가해한 사진을 만드는데"에 관심을 쏟았다. 그러나 프랭크가 형식을 무시하는 듯이 보인다면, 클라인은 시각적 효과를 확대시킨다. 프랭크가 의미의 위계를 파괴한다면, 클라인은 기법의 규칙을 파괴한다. 그는 미국 출생이었으나 주로 유럽에서 활동하였고, 유럽의 현대 예술가로서 자신의 고향인 인공의 도시 뉴욕을 촬영했다. 그는 여러 기호들로 치장되어 있는 도시의 모습을 담아냈는데 그것들은 주로 광고와 사인보드, 숫자, 이름, 빛, 인물 등등의 단편적이고 파편화된 것들이었다.
   
그는 이 사진집 <뉴욕>에 '뉴욕의 멋잇는 생활, 도취, 목격, 야단법석'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그는 "전적으로 통속적인 것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는 일상의 공격성을 거친 입자와 극적인 콘트라스트, 흔들리는 이미지로 일면 투박하면서도 강인한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사진에서 가장 많이 흔들리고 있는 것은 그 동안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보아왔던 인간의 이미지들이다.
그의 작품들에는 그동안 우리들이 포토저널리즘을 통해 익히 보아 왔던 - <라이프>지의 발행인 헨리 루스의 상징적인 창간사에 담겨있듯 - 인간의 본성에 대한 탐구랄지, 흥미를 느끼고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찾아볼 수 없거나 약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도시에서 인간은 사라지고, 그저 사물의 하나로서 존재한다. 윌리엄 클라인의 시선은 악의로 가득찼고, 악마적이고 허무적인 시선으로 인간의 이미지들을 토막낸다. 그러나 그의 작품들을 통해 우리들이 받게 되는 충격은 악의적이라는 느낌보다는 오히려 적나라하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인간을 도시에 갇힌 사물처럼 표현해내고 있는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오히려 적나라하다는 느낌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이라도 도시의 한 복판에 서서 오고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면 그 느낌이 무엇인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도시의 일상이다. 분명 윌리엄 클라인의 작품은 통속적이고, 그것을 표현하고 있는 기법들은 악의적으로 과장되고 있다. 그러나 그 작품들을 바라보는 우리들은 그것이 과장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적나라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것은 아마도 윌리엄 클라인의 작품이 작품 그 자체로서는 포토저널리즘이 지니고 있는 리얼리즘의 미덕을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바라보며 시각적 이미지들을 수용하는 수용자들의 심리 안에서는 일정한 리얼리티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굳이 용어화해본다면 '심리적 리얼리즘'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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