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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중 (왜 사진을 찍는가?)

· about Photograph,photographer
1954년 중학교 3학년시절 중앙일보 사진콘테스트 대상작품 <여장부>

[남기고] 카메라로 바라본 세상 12. `인간가족`전 [중앙일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사춘기 고민 풀어준 사진전

필자가 직접 만든 첫 개인전 팸플릿. 카메라 위에 병아리를 그려넣었다.

첫 개인전 때 일간지에 난 인터뷰 기사. 사진에 몰두하고 전시회를 준비하다 낙제를 하고 말았다.

첫 개인전 때 일간지에 난 인터뷰 기사. 사진에 몰두하고 전시회를 준비하다 낙제를 하고 말았다.

봉은사 가는 길 (1950년대의 강남 모습)

잔칫집 가는 길 (안양평야 부근)

한국전쟁 직후인 1950년대 중반 어느 여름날의 서울 을지로 입구. 깔끔한 차림으로 나들이 나온 일가족이 더위를 피해 건물 구석 그늘에서 길다란 ‘아이스께끼’를 먹고 있다. 카메라가 다가가자 아버지는 외면하고 어머니는 애써 무심한 척 하지만 아이들 눈은 호기심으로 동그래진다. 오른 쪽 아래 구두닦이 소년의 고무신과 새까만 발등도 보인다.

구한말 외국인 선교사가 찍은 풍물 사진이 아니다. 1950년대 중반, 전쟁은 끝났지만 우리의 삶은 헐벗은 산 만큼이나 궁핍했다. 사람들은 장작 한 짐, 닭 몇 마리를 지게에 얹고 장터로 향했다. 갓을 쓴 노인이 지게에 새끼를 가득 싣고 장터로 가고 있다. 새끼 위에 담뱃대가 점잖게 꽂혀있다.

들에서는 추수가 한창이고 초가 마당의 빨간 고추가 풍요를 더해주는 계절. 논두렁에서 단발머리 소녀와 마주쳤다. 대바구니를 옆에 끼고 벼 이삭을 한 움큼 쥐고 있었다. 사진을 찍겠다고 하자 소녀는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순박한 미소를 지었다.

밤새 눈이 내린 뒤 맑게 갠 겨울 아침, 뚝섬에서 조심조심 한강을 건넜다. 외딴집과 나룻배, 눈꽃 핀 수양버들이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지금 뚝섬 맞은편 한강변에는 무엇이 있을까? 거대한 올림픽 주경기장이 있다. 1950년대 중반 서울 잠실은 이런 모습이었다.

고교 2학년 때인 1957년 성탄절 아침, 카메라를 메고 명동성당으로 올라갔다. 나무 살에 창호지를 발라 만든 별 장식 아래 성당 마당에 사람들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역광을 받고 있는 성당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 댄 순간, 하얀 모자를 쓴 수녀 두 분이 앵글에 들어왔다.

누구나 그렇듯이 나도 사춘기를 겪었다. 하지만 친구들과는 좀 달랐다. 이성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었다. 대신'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두고 고민했다.
'이방인' '죄와 벌' 같은 두껍고 난해한 책들과 씨름했다. 뭔가 대답이 있을 것 같았다.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삶에서 배울 점이 있는지 관찰했다. 하지만 그런 책들의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가만히 앉아서 공상에 잠기면 행복했다. 상상의 세계에서는 불가능한 것이 없었다. 내가 원하고 꿈꾸는 세상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였다. 눈을 뜨면 고통과 좌절과 비극만이 나를 둘러쌌다. 낙제 또한 비참한 현실 가운데 하나였다. 수업시간에도 천당과 지옥을 오간 나의 상상은 교과서에 새까만 낙서로 남았다.
그 무렵 방황하는 내 영혼을 뒤흔들어 놓는 일이 있었다. 1957년 경복궁에서 열린 '인간가족(The Family of Man)'이라는 제목의 사진 전시회였다. 내용도 모른 채 보러 간 그 전시회는 나를 딴 사람으로 만들어 버릴 만큼 감동적이었다.
'인간가족'은 미국 사진가 에드워드 스타이켄이 55년 뉴욕 현대미술관 개관 25주년을 맞아 기획한 전시회였다. 3년간 세계의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200만여 장의 사진을 받아 503장을 추려냈다. 주제는 '인간은 하나'였다. 두 차례나 참혹한 세계대전을 겪은 인류에게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을 주는 것이 목적이었다.
사진전은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세계 순회 전시가 이루어졌고, 전쟁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한국에선 무려 30만여 명이 사진전을 관람했다.
감수성이 예민했던 사춘기 소년은 전시회에서 다양한 인생을 봤다. 공장 노동자의 강인한 팔뚝, 피리 부는 목동의 순수한 얼굴, 탯줄을 몸에 감고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아이, 남자의 등을 파고드는 여자의 손톱…. 사진들은 인간이라면 겪지 않을 수 없는 생로병사(生老病死)의 파노라마를 보여주었다.
나는 홀린 듯 전시장을 몇 바퀴나 돌았다. 한 장 한 장의 사진이 모두 경이롭고 신비했다. 사랑은 한 가지 감정뿐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름다운 사랑, 질투, 정열, 연민, 육체적 몰입…. 난해한 책과 씨름하면서 알고자 했던 답을 사진들은 쉽고도 명쾌하게 알려주었다. 그것은 바로 '다양함'과 '가능성'이었다.
'인간가족'전을 보기 전까지는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하느냐'에 대한 해답을 한 가지만 찾아 헤맸다. 하지만 삶은 다채로웠고, 가치관은 다양했다. 답은 한 가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비로소 나의 삶도 다양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 깨달음을 얻은 건 '사진의 힘' 덕분이었다.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의 힘. 사진은 마술 같은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가족'전을 본 뒤 더욱 사진에 몰두했다. 물론 공부도 슬슬 시작했다. 두 번 낙제하면 퇴학이었으니까.
김희중 <상명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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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중 일화를 한편 소개하고 싶다.
왜 사진을 찍는가?
세계적인 잡지 네셔널그래픽' 의 편집장이었고
사진작가인 김희중씨가 중학교 3학년때 겪었던 일이란다.
하루는 그의 아버지가 그를 부르더니 사진기를 내주었다
"이건 단순한 사진기가 아니라 마술상자란다. 그 이유를 알아보거라."
그는 아버지의 말씀을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방학동안아나마 사진기를 갖게 되어서 무척 기뻤다.
사진기를 들고 무작정 동네를 돌아다니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던중 한 새댁이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광경을 보게되었다.
평화롭고 고요한 새댁의 자태에 매료된 그는 자신도 모르게 사진기를 들어 찰칵찰칵 찍었다.
이번에는 자전거포 앞에서 한참을 구경하다보니 아저씨의 귀가 짝짝이었다.
한쪽귀는 보통사람의 한배 반이나 되었고 다른쪽 귀는 보통사람의 반밖에 되지 않았다.
그아저씨의 귀가 하루밤사이에 그렇게 된것을 아닐텐데 늘 지나면서도 발견하지 못한것이 참 이상했다.
사진기의 눈으로 사물을 보자 모든것이 새롭게 보였고 어느것 하나 소홀히 보여지는것이 없었다.
이사실을 깨닫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다시 그를 불렀다.
"숙제는 다 했느냐?"
"그건 잘 모르겠지만 사진은 많이 찍었습니다."
"그래, 무엇을 찍었느냐?"
그는 너무나도 아름답게 보였던 새댁의 젖먹이는 모습이며 자전거포 아저씨의 귀이야기,
그리고 새롭게 느껴지기 시작한 세상에 대해 설명했다.
묵묵히 김희중의말을듣고있던 그의 아버지는 껄껄껄 소리내어 웃으시더니 그에게 말했다.
" 참 좋은것을 발견했구나 .
시진을 찍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관찰력과 통찰력이 더 중요한 법이다.
사람은 항상 눈을 뜨고 살지만 세상의 모든것을 다 보지는 못하고 산다.
남이 보지못하는 힘이 생겼으니 이게 마술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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