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bout Photograph,photographer

브루스 데이빗슨은 1966년 사진가로서는 처음으로 국가에서 지원하는 예술기금을 받아 이후 2년간 작업한 “뉴욕의 할렘 동부 100번가 East 100th Street in New York’s Harlem” 라는 제목의 연작 사진들로 지금까지 많이 알려져 왔다. 또한 1966년 이스트만 하우스의 나탄 라이온스에 의해 기획된 “현대 사진가들, 사회적 풍경을 향하여Contemporary Photographers, Toward a Social Landscape” 전에 60년대를 대표하는 리 프리들랜더, 게리 위노그랜드, 대니 라이언 그리고 듀안 마이클과 같은 사진가들과 함께 초대됨으로써 더욱 알려지게 되었다. 데이빗슨은 미국에서 영향력있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들 중 하나로 여겨져 왔고 매그넘 포토 Magnum Photos의 일원으로 1958년부터 활약하고 있다.

1959년 봄 브루스 데이빗슨은 스스로를 “조커스The Jokers” 라고 부르는 청소년 갱단을 사진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데이빗슨이 견지하는 작업 태도는 어떤 대상에 대해 기록하기로 마음 먹었을 때 일단 그 안으로 들어가서 그들과 같이 생활하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태도는 할렘을 기록한 동부 100번가 시리즈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데이빗슨은 “브룩클린 갱, 1959” 시리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내가 작업하는 방식은 알려지지 않은 세계로 들어가서 한동안 버텨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무언가를 배우려고 노력한다.
이 사진들은 이들 청소년들의 풍부한 감정을 드러냄과 동시에 금방 무슨 일이라도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을 드러낸다” 브루스 데이빗슨은 이들 청소년 갱들의 겉으로 드러나는 차가운 인상 안으로 들어가 그들의 외로움, 분노 그리고 두려움과 같은 감정들을 읽어낸다. 데이빗슨의 카메라는 갱 일원임을 나타내는 문신, 선글래스 그리고 잔뜩 기름칠을 한 머리와 같은 단순한 표식을 보여주는 데에서 더 나아가 상처받기 쉽고 때로는 활기에 가득 차 있는, 보다 일반적인 의미로서의 그들의 존재감을 기록한다. 데이빗슨의 사진은 젊음의 불안한 행동양식을 범죄자라기보다는 자기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필사적인 행동으로 그려낸다. 따라서 “브룩클린 갱, 1959” 시리즈는 개개의 사진들이 하나로 통합되어 보여질 때 갈망, 불안, 소외 같은 것들을 암시하는 복잡한 초상화와 같이 다가오는 것이다.
브루스 데이빗슨의 전시 “브룩클린 갱, 1959” 을 보면서 떠올리는 것은 당연히 로버트 프랭크의 사진들이다. “브룩클린 갱”은 로버트 프랭크가 개척한 개인적인 시점에서 바라보는 일상적인 정경에 초점을 맞추는 방법론을 공유하고 있지만 프랭크의 사진이 보여주는 현대인의 소외나 외로움과 같은 보편적인 정서로서의 유대감이 크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러한 점은 마치 낸 골딘의 사진이 휘트니 미술관에서 대대적으로 회고전을 가질 정도로 미국 특히 뉴욕에서 대중적인 인지도와 함께 이슈화되는 것이 필자에게는 그다지 피부에 와닿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다. 낸 골딘의 사진에서 다루어지는 내용과 한걸음 더 나아간 다큐멘터리 사진의 방법론을 머리로 이해할 수는 있지만 이러한 이해로는 왜 미국인들이 그토록 열광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는지는 미국인으로서 살아가지 않는 이상 결코 체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낸 골딘의 작품에 대한 관심은 아마도 미국인의 삶과 흔들리는 자기정체성을 정확하게 사진을 통해 보여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국제사진센터 본관 갤러리에서 데이빗슨의 사진을 관람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지켜보며 떠올렸던 생각이다.

All Posts
×

Almost done…

We just sent you an email. Please click the link in the email to confirm your subscription!

OKSubscriptions powered by Striking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