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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 마가렛 카메론의 초상사진에 대한 연구(하편)

· about Photograph,photographer

현실과 이상의 불가능한 닮음

줄리아 마가렛 카메론의 사진을 특징짓는 또 다른 측면은 작품의 정신적인 표현에 있다. 우선 작품의 출발점으로서 부인이 찾고자 하는 것은 렌즈 앞에 놓인 "모델의 영적인 상태"1)이다. 촬영 직전 작가의 감각에 따라 결정되는 사진의 몽환적 분위기 즉 사진의 흐린 효과는 그 때 단순한 그림의 효과가 아닌 하나의 정신적 표현으로 응시자로 하여금 일종의 영적 신비 의식 gnosis 같은 초자연적인 시각을 갖게 한다. 그럴 경우 흐린 효과는 보이는 물질적 대상을 비물질적 대상으로 이동시키는 수레 역할을 하며 또한 현실의 실체를 비현실적 실체로 현전(출현)하게 하는 도구로 이용된다고 할 수 있다. 관객에게 전달되는 사진적 이미지가 모델 앞에서 갖는 작가 고유의 직감에 의한 것이라면 캐머런 부인의 사진은 결국 "내재적 형상의 재현"으로 볼 수 있고 또한 진정한 작가의 예술적 의도는 사실상 존재론적 관점에서 파악되어 져야 할 것이다. 이런 관점의 분석은 오늘날 우리들이 익숙한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인식 방법과는 다소 다른 관점이며 또한 비인식적 개념에 관계하는 철학적 용어의 도입과 그로 인한 의미의 모호성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의 "정신적 표현"은 오늘날 모더니즘 예술 세계의 중요한 표현으로 실질적인 작품의 모태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19세기의 정신적 표현은 오늘날 흔히 말하는 형이상학적 관념 세계 즉 현실에 사고의 근거를 두는 존재론적 실존주의와는 달리 대부분의 경우 종교, 신비, 이상, 영혼과 같은 현실 밖의 초월 세계에 관계한다. 이러한 비현실적 세계는 오늘날 과학적인 사고를 근거로 하는 인식론에 의해 허구적인 상상 속으로 이미 추방되었지만 대부분의 19세기 사람들은 그것을 하나의 현실적 존재(단지 비과학적 대상일 뿐이다)로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캐머런 부인의 사진적 표현은 이런 경우 19세기의 가장 좋은 모델이 되고 그때 그녀의 예술적 표현은 현실의 보이는 대상으로부터 초월적 transcendant 세계의 이상을 재현하는 "이상적인 전이 transition ideale"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전이는 특별히 사진적 방법에 의한 연출(ca a ete joue)2) 즉 연극화를 통해 시행되는데 왜냐면 부인의 작업은 근본적으로 그림에 관계하고 사실상 부인은 사진이라는 매체를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예술로서의 사진이 아닌 전통적 그림(High Art)의 조형적 도구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징적으로 캐머런 부인의 사진들은 모두 철저히 계산되고 연출된 사진으로 그 작품 구성의 모델은 전통적 그림에서 온다. 그래서 부인의 예술적 실행은 실질적으로 사진의 카테고리가 아니라 그림의 영역 속에서 시행된다. 한편으로는 렘브란트 방식의 북방 미술과 또 한편으로는 라파엘 방식의 남쪽 이태리 예술을 접맥시키면서 부인은 자신의 예술적 행위를 전통예술과 동일시하려는 의도를 가졌다. 당시 대부분의 사진가들과는 달리 캐머런 부인은 자신을 화가로 생각했고 이런 생각은 영국 빅토리아 시대 사진가로서 예외적인 경우였다. "그래서 캐머런 부인의 사진적 작품은 자연스럽게 당시 영국의 중요한 회화운동인 "전라파엘주의 Preraphaelisme" 맥락에서 이해된다"3)고 할 수 있다. 사실상 캐머런 부인의 예술적 감각은 전통적 그림 위에서 형성되는데 특히 그녀의 작품 속에 나타나는 대부분의 내용은 라파엘과 같은 르네상스 이태리 거장들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성경 주제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영국 정교의 독실한 신자였던 부인은 부모, 친척, 친구들과 같은 측근을 모델로 하면서 성경의 내용들을 재구성하는 일종의 사진적 단편 연극들을 만들었다. 당시의 아방가르드 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 전라파엘주의 혹은 라파엘전파는 우선 예술적 진보에 반하는 고전적 양식으로 빅토리아 시대의 아카데미즘과 산업사회의 신 풍속에 대항하는 회화의 사실주의 운동이다. 이런 경향의 작가들은 이태리 거장들의 작품들을 모델로 하면서(여기서 전라파엘주의 용어가 유래한다) "자연"으로부터 영감 받는 복고적인 예술을 주장한다. 이를 위해 단지 이태리 거장들의 사실주의뿐만 아니라 "자연"의 관점(산업사회의 발전이나 발명 혹은 개혁과 같은 모든 진보적인 사고와 반대되는 개념)에서 거장들의 청명성을 모방하려는 예술적 의도를 가진다. 공통적으로 전라파엘주의자들의 작품 경향은 세심하고 세부적이고 명확한 사실주의로 나타난다.4) 이런 시대적 배경에서 캐머런 부인의 사진적 방법은 두 가지 요소로 결정되는데 하나는 이태리 거장들의 사실주의 스틸이고 또 하나는 성경과 관련된 내용의 연극적 재구성이다. 전라파엘주의를 특징짓는 주요한 내용이기도한 부인의 성경 주제는 작품에서 어떤 한 사건이나 인물을 재현하는 형식으로 나타나고 그 내용은 앞서 말한 자연으로의 복귀와 그 문맥을 같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머런 부인은 전라파엘주의자로 분류되지 않으며 그녀의 사진 작업 또한 이런 회화운동에 의해 직접적으로 영향 받지 않았다. 물론 큰 미술사조의 흐름에서 부인의 작품은 시대적으로 그들의 작품과 같은 예술적 의도나 문맥에서 이해될 수도 있지만 우선 부인은 전라파엘주의 화가들과 동시대인이 아닌 약 한 세대 앞선 시대에 있었다. 부인이 그들의 활동시기보다 약간 늦은 1860년대에 와서야 예술적 활동을 시작했고 또 그때 살롱에서 부인은 자신의 넓은 사교적 활동으로 그들 중 대부분을 알았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는 흔히 캐머런 부인을 그들과 동화시키려는 경향을 갖는다. 그러나 사실상 그녀의 예술적 감각은 그들의 예술운동 이전에 이미 형성되었고 또한 부인은 그들의 세심하고 세밀한 사실주의와 지나치게 병적인 그들의 주제를 결코 모방하지 않았다.5) 성경과 자연에 관련되는 주제는 그들과 부인의 작품에서 같은 맥락에 있기는 하지만 원칙적으로 부인의 창작적 동기는 이런 회화운동에서가 아닌 자신 고유의 예술적 감각과 확고한 종교적 믿음에서 출발된다.
캐머런 부인의 예술적 감각은 근본적으로 자신이 타고난 섬세한 감성과 기질에 빚지고 있지만 그 형성과정에서 예술적 환경 또한 부인의 예술적 감각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녀의 사진에 영향을 준 가장 큰 요소는 당시 부인이 알았던 몇 몇 사진가들과의 빈번한 접촉에서 온다. 이들은 사진을 역사그림이나 풍속그림과의 경쟁적 맥락에서 그림과 동일 시 하려는 의도를 가졌는데 이는 캐머런 부인의 예술적 의도와 같은 문맥으로 이해된다. 사진에 대한 부인의 예술적 감각에 결정적 영향을 준 사진가는 처음 그녀에게 초보적인 사진기술을 가르쳐 준 오스카 귀스타프 레일랜드 Oscar Gustave Rejlander로 1857년에 전시된 그의 유명한 사진 작품 "두 가지 인생길"은 사진적 형태의 예술작품으로서 사진에 관한 중요한 논쟁을 일으켰다. 하나의 인화지에 다양한 음화들로 구성된 그림 이미지는 전통적 회화에 대한 일종의 도전인 동시에 사진을 예술적 매체로서 인정해 주기를 원하는 요구였다. 그러나 이런 합성사진은 당시 몇 몇 비평가들에 의해 외면되었고 그 예술적 요구 또한 묵살되었다. 사실상 1850년대부터 당시 화가이면서 동시에 사진가인 샤를르 네그르 Charles Negres, 귀스타프 르 그레 Gustave Le Gres 혹은 리챠드 팬톤 Richard Fenton 같은 사진가들의 사진적 실험(공통적으로 미술적 관점에서 사진을 실행한다)에서 보듯이 사진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인정받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었다. 레이랜드는 자신의 그림적 사진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난 예술가들(당시 사진가와 화가)에게 어떻게 사진이 그들의 예술적 실행에 있어 도구로 이용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싶고 또 그 도구는 단지 그림의 세부적인 것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작품 완성 이전에 구성상의 보다 완전한 요소(초벌 스케치나 내용도입과 같은 준비작업)로도 이용될 수 있는 것을 말하는 사진의 "조형성 plasticite"을 보여주고 싶다."6) 여기서 사진적 "조형성"은 그의 사진적 활동에 있어 가장 중요한 개념인데 그에게 사진은 단지 자연적 대상의 상세한 모방에 근거를 두는 기계적 생산물로 간주되는 것이 아니라 비록 작가의 의도가 대중에게 무시된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한 작가의 사고적 표현 방법으로 간주된다. 이런 조형성은 사진을 작가의 표현 방법 중 하나로 생각하는 캐머런 부인에 의해 다시 언급되어진다.
레이랜드와 캐머런 부인은 공통적으로 "하나의 대상을 가지고 한 작품을 만드는 것은 작가가 표현하는 사고이지 작가가 이용하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다. 예술은 이런 사고를 보이게 하는 방법이다.7)"라고 진술하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캐머런 부인이 사진을 실행한다는 것은 현실을 시각적으로 재생산하는 기계적 행위가 아닌 더 이상 현실에 근거를 두지 않는 보이지 않는 세계(감각의 비인식 세계)를 보이게 하는 행위로 볼 수 있다. 이런 개념은 사진을 그림적 사실주의에 관계되는 도구 즉 데생과 같은 그림의 초벌작업을 위한 보조적인 도구로서 간주하거나 혹은 사진을 담채화나 수채화와 같은 그림의 대용물로 생각한 칼로타입 사진가(특히 힐과 아담슨)들의 사진에 대한 개념과는 다소 거리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그와 같이 캐머런 부인의 관점에서 볼 때 사진은 그림시행에 있어 자세한 부분이나 사실주의적 시행의 경감을 위한 보조적 도구가 아닌 시각 예술의 조형적 요소들 중 하나로 간주되는데 이런 개념은 당시 대중의 지배적인 여론을 이끈 러스킨 Ruskin의 견해와는 대조를 이루고 있다. 전라파엘주의의 이론적 근거를 제시한 러스킨은 "예술적 시행에 있어 작품이 귀족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주제의 특징적인 외형을 포착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8)고 언급하고 있다. 다시 말해 대상의 외적인 분명함과 상세함을 강조하면서 사진의 이용은 이러한 외적 포착을 위한 보조 도구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캐머런 부인은 이와는 달리 비록 외적 닮음이 절대적이지 않더라도 예술적 가치와 귀족적인 표현은 주제의 아름다움과 부드러움 그리고 은총과 같은 정신적인 닮음에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문맥에서 부인은 자신의 사진에서 의도적으로 혹은 비의도적으로 나타나는 흐린 효과를 그림의 효과로 받아들였고 오히려 이런 효과를 현실의 단순한 기계적 확인을 넘어 귀족예술(High Art)의 예술적 자국으로 간주했다. 다시 말해 사진적 흐림은 그녀의 창조적 정신 속에서 아주 중요한 조형적 요소를 구성했다. 그러나 캐머런 부인이 조형적 언어로 이용하는 사진의 흐린 효과는 당시 많은 사진가들에게 의도적 표현 방법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런 효과는 사진 실행에서 사진을 미술의 그래픽적 방법으로 간주하는 핸리 피츄 로빈슨 Hanri Peach Robinson의 사진 작품에도 또한 조형적 사고에 근거를 두는 레이랜드의 사진 작품에도 나타나지 않았는데 이는 당시 사진과 미술을 접맥시키는 새로운 시도로 볼 수 있다.
사진을 귀족예술의 매체로 간주한 캐머런 부인은 사진촬영을 마치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방식으로 시행했다. 특히 모델의 조명처리에서 그러한 의도는 분명히 나타난다. 부인의 대표적 초상사진인 "허버트 뒤크월트 부인 Mrs. Herbert Duckworth"(1867)은 이런 맥락에서 거의 상징적 작품으로 간주된다. 모델은 빼어난 미모를 가진 부인의 조카(나중 유명한 시인 버지니아 울프의 모친)로 부인의 단골 모델중 한 사람이고 작품은 렘브란트나 카라바지오 방식의 음양효과 claire-obscure의 완벽한 북 유럽풍 초상그림으로 나타난다. 특별히 이 초상의 "조명처리는 두상의 아름다움과 힘을 강조하기 위해 섬세하게 처리되고 있는데"9) 이런 조명 방식에 의해 촬영된 많은 사진들 중 가장 예외적이고 완벽한 그림 이미지를 준다. 부드럽고 어렴풋한 외줄 광선으로부터 솟아나는 옆모습의 얼굴은 마치 강렬한 대조를 이루는 빛 속에서 조각된 형상처럼 나타나고 그 때 어두운 음양효과는 응시자로 하여금 완벽한 렘브란트 초상을 상기하도록 한다. 이는 곧 근본적으로 사진이 전통적이고 귀족적인 초상그림을 모델로 촬영된 사실을 말하고 있다.
전통적 그림을 근거로 처리된 조명방식의 또 다른 예는 성경의 줄거리와 북쪽 미술양식을 접맥한 "무덤의 천사 The Angel at the Tomb"(1869)로 모델은 전통적 그림의 역광 효과(당시 초상사진에서 금지되는 방식)에 의해 촬영되었다. 역광의 마술적인 효과는 어두운 배경에서 천사의 윤곽을 솟아나게 하고 풀어 헤쳐진 머릿결에서 발하는 부드러움은 더 없이 감탄스런 여성의 윤곽을 빗어내고 있다. 희미한 빛에 의해 하늘거리는 머릿결의 아름다움은 렌즈의 심도에 의해 야기된 사진의 흐린 효과에 의해 더욱 강조되는데 당시 비평가들은 이런 머릿결을 "자연의 시적 표현"으로 간주했다. 또 그들은 이것을 전통적 그림과 비교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여자(캐머런 부인)는 아주 수준 높은 예술적 질을 표현하기 위해 몇 몇 거장들의 작품을 면밀히 연구한 것 같다. 사실상 머리칼의 탁월한 톤과 선의 부드러움은, 가정하건데, 불완전한 렌즈의 초점에서 오지만 이런 머릿결의 흐림은 선명한 머리칼이 결코 표현할 수 없는 매력을 던지고 있다."10) 사진의 거의 하단 전체를 차지하는 흐린 효과는 여기서 어두운 배경에서 솟아난 상단의 얼굴 옆모습을 강조하는 "돋보이기 효과 repoussoir"로 나타난다. 사실상 사진에 있어 이러한 그림효과는 결과적으로 거장들의 작품을 모방하면서 부인은 자신의 정신적 표현에 사진의 흐린 효과를 조형적 언어로 이용했고 작품의 구성에서 조명 방식이나 모델 배치는 의심할 바 없이 전통적 그림의 모방을 말해주고 있다.
줄리아 마가렛 캐머런의 초상촬영은 자신이 선별한 모델의 외형적 닮음에 그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모델의 개성이나 기질을 포착할 의도로 시행된다. 부인의 관점에서 사진적 행위는 모델이 외형적으로 갖는 형태 forme의 재현이 아닌 그 형태로부터 이상적인 의미를 던지는 형상 figure을 만드는데 있다. 다시 말해 "(촬영된) 이미지들은 사실적인 진실과 이상화된 연출 사이에 놓아진 공간 속에서 그들의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 그때 작가는 현실의 모델들을 이상화된 주제들로 바꾸고 있다."11) 여기서 이상(Idea)은 당시 도덕적으로 종교적으로 사회가 요구하는 절대적 미를 말하는 것으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도덕적이고 지적인 최상의 모델을 의미한다. 캐머런 부인이 그녀의 모델을 통해 찾고자 하는 것은 결국 "미의 이상" 혹은 "불멸의 영혼"과 같은 비현실적이고 초자연적인 것이다. 이러한 의도로 언제나 모델들은 연극적인 연출 속에 놓여진다 - 초상촬영을 위해 모델이 렌즈 앞에 놓일 때 부인이 시행하는 첫 번째 작업은 단순히 (카메라 유리판에 맞추는) 렌즈의 초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델이 발산하는 인간의 위대함이나 절대적인 미 혹은 종교적 영원성 같은 이상화된 인상에 가장 가까운 이미지를 찾는 것이다. 작가가 모델 앞에서 자신의 감각에 의해 형성되는 이런 절대적 순수 인상은 쉽게 말해 "직감 instant"이다. 바로 이런 감각은 사실상 캐머런 부인의 예술적 창조작업에 가장 중심이 되는 원동력 즉 "창작의 생성 la genese de la creation" 혹은 모태가 된다. 창작에 있어 가장 근원적인 단계라고 볼 수 있는 "생성(모태) genese"은 단지 우리들의 사고에서 보이지 않는 감각세계12)에서만 존재한다. 역사적으로 많은 작가들이 그들 나름대로 보이지 않는 세계를 시각화하는 작업을 시행해 왔다. 폴 클레가 "예술은 보이는 세계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안 보이는 세계를 보이게 한다"라고 하듯이 진정한 예술은 비물질적 대상들을 감각적인 형태로 물질화하고 시각화하는 작업이라 볼 수 있다. 창작의 근원으로서 생성(어원적으로 모든 진화적 사물의 최초의 출발점이 되는 "제로"단계)은 현상학적 의미에서 "본질 혹은 진수 essence"를 말하는 것으로 이는 또한 존재론적인 추적 대상이다. 메를로 퐁티 미학에서 언급되는 예술의 근본적인 추적도 이러한 생성에 대한 시각화와 또 그것이 가시적으로 출현시키는 대상(현상)에 대한 끝없는 의문일 것이다. 하나의 사물은 언제나 이중구조(플라톤의 크라틸과 크라틸리우스)를 가지는데 보이는 존재는 세속적 시각으로 볼 때 보이지 않는 존재를 감추고 있다. 여기서 그 사물의 본질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 은닉되어 있고 단지 징후적 형태로 우리들의 보이는 세상에 출현할 뿐이다. 그때 작가는 자신의 감각에 의해 그 대상의 본질을 감지할 수 있다고 한다. 예컨대 화가가 어떤 대상 앞에서 그림을 그릴 때 흔히 화가는 자신이 보는 것 다시 말해 보이는 세상을 그린다. 그러나 그가 단지 그 대상의 표면만을 말하는 외관으로부터 분리된 어떤 정신적 혹은 개념적 구성 즉 모델의 본질을 포착하려 한다면 그는 외관이라는 장애물을 우회할 수 있는 또 다른 시각을 가져야 한다. "이런 시각(우회하는)으로 볼 때 그것은 그때 (화가에게) 거울과 같은 반사로 나타난다 (...) (보이는 대상과) 똑 같은 것이 저쪽 건너편에 있는데 이쪽 시각으로 볼 때 그것은 대상과 동질적이지만 생성적이고 변화무쌍한 비슷한 대상으로 나타나다, 화가가 보는 것은 저쪽 너머에 있는 산(장애물)이고 또한 그가 자신의 시각으로부터 의문을 품는 것도 바로 이산이다."13) 보이는 세계에서 이런 유사한 대상은 우리들 눈에 있음직 하거나 혹은 있음직 하지 않은 산을 만들고 있다. "빛, 조명, 그림자, 반사, 색 등으로 찾고자하는 모든 대상들은 완전히 실질적인 존재들(본질)이지 않다 : 그 실질적인 존재들은 유령처럼 단지 시각적 존재만 가질 뿐이고 (또 그때) 세속적 시각계의 문턱에만 있을 뿐이다. 그것들은 공통적으로 보이지 않는다."14) 이런 수수께끼 같은 산을 구성하는 유령 같은 존재들은 사실상 우리들 이성 밖에 있고 마치 구름이나 안개처럼 사고 pensee 의 구면을 빙빙 도는 달무리 형태를 이룬다. 또한 이것들은 앞서 말한 산 넘어 은닉된 본질 essence을 탐지하게 하는 "사인"이나 "자국"(사진 인덱스의 징후와 같은 개념)으로 간주될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모더니즘은 근본적으로 바로 이런 안 보이는 세계의 외재화를 위해 보이는 세계를 뛰어 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자연에 대한 레오나르 다빈치와 세잔의 의문이나, 왜곡된 사회와 변질된 인간성에 대한 우리들의 원천적 존재 essence를 재현한 자코메티의 "불가능한 닮음" 혹은 "시적 음악적 전이"로 재현된 클레의 그래픽적 그림들은 바로 이러한 보이지 않는 세계의 외재화로 볼 수 있다. 보이는 세계의 사물들 위에서 나타나는 변화무쌍한 현상들, 이에 대한 의문은 사물의 비밀스런 "생성"을 포착하려는 끝없는 시각적 추적이다. 다시 말해 이것은 어떻게 현실의 물질적 대상으로부터 그 대상의 본질을 포획하고 표현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기도하다.
비록 캐머런 부인이 19세기 작가라 할지라도 부인의 예술적 의도는 모델에 숨겨진 본질에 대한 끝없는 존재론적 추적으로 볼 수 있다. 부인이 자신의 사진촬영에서 찾고자 한 것은 의심할 바 없이 모델 뒤에 은닉된 "이상화된 순수성"이다. 그러나 이런 비물질적인 것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재현이며 단지 사진의 흐린 이미지가 가져다 주는 인덱스적 "징후"로서만 출현할 뿐이다. 거울과 같은 징후는 모델에 대한 작가 고유의 감각 즉 직감에서 온 시적 낭만적 전이로 볼 수 있다. 그것은 형상 figure의 외재화이다. 그래서 캐머런 부인은 더 이상 현실의 모방(인간의 형태 forme)이 아닌 인간(상징적으로 초상을 말함)의 형상 figure에서 발산되는 "초자연적인 자연 la nature naturante"15)에 대한 사진적 재현을 시도한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촬영 직전 캐머런 부인이 자신의 직감을 통해 포착하는 모델의 순수 인상(본질, 근본, 초자연 등)은 "스티문 stimmung"(히이덱그 용어)라고 부르는 것으로 이는 진정한 예술적 창작 근원이 된다. 또한 이것은 화가가 이젤 위에 자신의 화폭을 놓기도 전에 혹은 사진사가 모델을 놓고 초점을 잡기도 전에 이미 형성된다. 알렝 봉팡에 의하면 "스티문"는 감각이 대상에 접하는 순간 가장 순수하게 작동하는 "인상 impression" 혹은 가장 원천적인 "음색 tonalite"으로 이해되며 동시에 "거뮈트 gemut"라는 일종의 음색도취를 가지게 하는 순간이라고 한다. "우리들 감성의 양태들이 펼쳐지기 직전 가장 원천적인 형태로 수렴하는 것, 우리는 그것을 (감정의)심장 coeur 즉 "거뮈트"라고 부른다."16) "그때 거뮈트는 중세 시대의 종교적 신비 속에서 "영혼의 절정"상태를 의미하는 신학적 용어이다."17) 이러한 중세 기독교적 용어의 도입은 초자연적인 영적 신비의식인 그노시스 gnosis 와 같은 절대적 음색과 그로 인한 도취를 말하기 위한 것이다. 의심할 바 없이 절대적 신비의식인 거뮈트는 캐머런 부인의 사진적 행위에 가장 중심되는 원동력이 되며 부인 자신의 직감에 의해 실현된 시적이고 이상적인 사진 또한 엄밀히 말해 작가가 모델과의 대면에서 오는 강렬한 "음색" 에 우선적으로 빚지고 있다. 그처럼 부인의 사진은 자연의 힘과 작가의 음색도취 사이에서 나오는 조화의 재구성 즉 "내재적 음색의 재현"으로 볼 수 있다. 줄리아 마가렛 캐머런은 단지 시각적 감각뿐만 아니라 모델과의 교감에서 오는 자신의 고유한 감각에 따라 모델을 찍는다.18) 그 감각은 자신이 의식하기도 전에 이미 형성된 "음색의 직감"으로 진정한 창작의 동기가 되며 그 때 사진은 이러한 음색의 재구성인 동시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재현인 것이다. 캐머런 부인의 이상적인 재현들은 이런 맥락에서 현실의 대상에 은닉된 초자연적인 자연과 그 진실의 신호들이면서 또한 정신적 영원을 암시하고 있다.
모델에 대한 작가의 직감적인 음색은 달리 말해 모델이 풍기는 뚜렷한 개성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개성은 캐머런부인의 거의 모든 초상사진에 충실히 각인되어져 있고 또한 이런 이유로 부인을 19세기 사진가들 중 가장 차별되는 초상사진 작가로 간주하고 있다. 물론 나다 G. T. Nadar, 카르자 E. Carjat 같은 사진가들의 초상사진에도 모델의 탁월한 개성을 재현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사진에 남긴 모델의 개성은 전통적으로 흔히 볼 수 있는 자연스런 조형미일 뿐 캐머런 부인의 초상사진에서 감지되는 초자연적인 인상은 그들의 사진에서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부인의 독특한 초상사진들은 모델의 자연미와 매혹적 개성을 잘 재현한 힐과 아담슨의 인물사진과 비교해 볼 때도 조명 처리나 장면 구성 혹은 모델의 포즈 등의 여러 가지 측면에서 현저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특히 장면 구성에서 볼 때 "부인의 사진에는 힐과 아담슨이 재현한 (모델의)매혹과 자연미는 어딜 봐도 찾을 수 없다. 힐은 독사진이나 그룹사진에서 탁월한 인물 구성을 보여 주는 반면 캐머런 부인은 이런 구성에 있어 특히 인물 그룹 사진에서 전혀 관심을 보여 주지 않는다." 19) 사실상 부인의 장면 구성은 비록 많은 부분에서 그림적인 방식과 효과를 도입했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경우 아주 주관적이고 개인적 표현에만 관계하고 있다. 이에 반해 힐과 아담슨의 경우는 그들의 주제와 모델들은 거의 정확히 그림의 구성 방식과 일치되고 있다.
캐머런 부인의 이상화된 음색의 재현은 크게 두 가지 개인적인 영향에 의해 실현되는데 한편으로는 부인의 종교적인 믿음이고 또 한편으로는 당시 많은 예술가들과의 접촉이다. 이런 예술적 동기들은 근본적으로 시대가 요구하는 도덕적인 미와 특히 종교적인 절대성을 표현하려는 경건하고 심오한 정신에 관계한다. 작가의 종교적 믿음은 작가가 예술을 임하는 자세에 "종교적 예술은 영원하다" 즉 "불멸의 미"라는 정신적 배경을 갖게 했다. 당시 이러한 배경에 관해 존 헨리 뉴톤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 주위의 친구들조차도 초자연적인 힘을 방출하고 있다 : 그들은 더 이상 불완전한 인간이 아닌 행복한 미래를 기약 받고 신의 축복으로 감싸인 존재들 다시 말해 신의 은총을 받은 환희인 것이다." 20) 이는 곧 미적 기준을 종교적 가치와 상징 속에서 이해함을 말하며 또한 "각각의 사건은 신의 섭리를 암시하고 또한 각자에게는 초자연적인 교감이 있다"21)라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종교적 진술은 신의 절대성과 신의 산재성 속에서 예술의 이상을 찾고자 한 당시의 종교적 미학을 함축하고 있다. 기독교(영국정교)의 구약성서에서 영감을 받은 캐머런 부인은 많은 종교적 주제를 사진적 형태로 재현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이런 주제는 연극의 단편 형식이나 마치 드라마의 한 컷트 처럼 연출된 장면으로 나타난다. 촬영을 위해 분장된 모델 앞에서 부인이 포착하고자 하는 것은 사진적 형태로 나타나는 인간의 숭고함이나 순수성 또는 신의 은총과 섭리로 이는 작가가 모델을 통해 얻고자 하는 초자연적 종교적 음색이다. "(...) 성스럽고 전설적인 주제로부터 영감 받은 부인의 작품들은 그때 긴 서술적 주제를 하나의 장면으로 극도로 축약되고 농축된 말하자면 상징적 재현으로 나타난다. 부인이 선택한 촬영의 순간은 여자이든 남자이든 촬영되는 모델의 시선과 배치 그리고 머리칼 등이 번역하는 장중하고 몽환적인 상태의 재현 순간이라 할 수 있다. 거기서 표현된 감정들은 시각화되지만 설명할 수 없는 (...) 미스테리한 상징들이 된다."22) 그처럼 부인의 이상적인 재현은 부인이 모델을 연출하기 이전에 이미 형성된 초자연적인 음색에 관계하고 있고 그때 사진의 흐린 효과는 이런 음색을 사진적 이미지에 교부하는 탁월한 예술적 방법으로 나타난다.
성경의 주제를 담고 있는 많은 사진들 중 "베아트리스 센시"(1868) 시리즈 사진은 모델이 발하는 초자연적 음색을 상징적으로 재현한 연출사진들 중 가장 좋은 예가 된다. 1870년에서 1875년 사이에 캐머런 부인은 오래 전부터 존경한 빅토르 위고에게 스물 여덟 장의 사진들을 보냈는데 그 중 두 장이 주인공 베아트리스에 관한 사진이다 - 비평가들은 부인이 이 주제에 관해 적어도 석 장은 제작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이런 사실은 위고가 죽고 난 다음 그의 캐비넷 서랍에서 캐머런 부인의 사진들이 발견되어 알려지게 된다. 사실상 위고는 당시 일방적으로 부인으로부터 사진을 받았는데 한 번도 사진에 대한 비평이나 언급을 하지 않았다. 왜냐면 비록 자신의 동생이 사진가 이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문학적 작업과 그것에 관계되는 그림이외 사진에 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두 장의 사진 중 하나인 이 초상은 실제 인물 베아트리스의 비극적 이야기를 위한 일종의 습작으로 연출된 사진이다. 사건의 내용은 아버지와 근친상간을 범한 베아트리스 센시가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공모하여 아버지를 죽여 결국 종교재판의 비극으로 끝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진 장면은 두 번의 도덕적인 죄로 인해 몹시 괴로워하는 주인공의 초상이다. 원래 이 내용은 종교적 죄와 회개라는 주제로 당시 이태리 화가 기도 레니 Gido Reni에 의해 드라마 형식의 그림으로 재현되었고 또 영국에서는 이런 비극이 소설화(대중)되었다. 아마도 영국에서 이 사건이 대중의 관심사가 되었을 때 캐머런 부인은 사진적 방식으로 주인공을 재현했던 것 같은데 그 연출된 어린 베아트리스의 이미지는 부인이 사진을 위해 참조했던 기도 레니의 오리진 그림보다 더 극적으로 나타난다. 특히 예술적 번역과 심리적 관점에서 볼 때 그 표현적 맥락이 훨씬 더 심화되고 거의 초월적 이미지로 번역되어져 있다. "머리결과 (그것을 감싸고 있는)천이 어우러져 만드는 웨이브 공간 속에서, 또한 사진의 흐린 효과로 인한 몽롱한 분위기 속에서, 부드러운 빛에 의해 신비롭게 빗어진 이 얼굴은 아직도 어린 티가 나는 사연 어린 감정에 떨고 있는 듯하다. 그와 같이 전율하는 감동적 이미지는 자신의 운명에 의해 고통 받는 가엾은 소녀의 고뇌를 경이롭게 표현하고 있다."23) 결국 사진의 주제는 도덕적 종교적 죄를 범한 사람들에 대한 동정으로 그 이면에는 캐머런 부인이 영감 받은 신의 은총과 자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베아트리스"사진은 이런 관점에서 작가가 감지한 초자연적인 종교적 음색의 재현이라 할 수 있다.
줄리아 마가렛 캐머런에게 예술적 동기를 부여한 또 다른 요소는 와트 G. F. Watts, 로세티 D. G. Rossetti, 테니슨 A. Tennyson, 타이러 H. Taylor 등의 당대 많은 유명인들과의 사교적 접촉이다. 특히 빅토리아 시대 유명한 화가인 와트의 영향은 부인의 예술적 감각형성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는데 와트의 초상에서 얻은 정신적인 영감은 부인의 이상적 재현에 거의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사실상 와트는 특별히 모델들의 영혼을 재현하는데 몰두했다. 캐머런 부인이 사진을 시작하기 오래 전부터 부인은 와트를 잘 알고 있었고 또 그의 작품을 경이롭게 평가하고 있었다."24) 자연에 대한 외관적 복사와는 정반대의 예술적 개념을 가진 와트는 비록 전라파엘주의자는 아니지만 티시엥, 티토레, 렘브란트와 같은 거장들의 작품을 모델로 삼으면서 대상의 단순한 재현이 아닌 모델이 은닉한 정신적인 미에 대한 이상적인 번역에 자신의 창작적 의도를 가졌다. 캐머런 부인 역시 거장들의 작품을 모방하면서 자신의 창작적 개념을 물질적 재현이 아닌 정신적 표현에 두었다. 와트에게서 예술은 "미"와 정신(영혼)"으로 요약 될 수 있는데 캐머런 부인의 사진에서 시적이고 거의 영적인 재현은 와트의 이러한 정신적 경향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이런 두 작가의 공통적 경향은 정확하고 세밀한 묘사에 바탕을 두는 전라파엘주의자들의 경향과는 분명히 대조를 이루고 있다. 캐머런 부인의 이상화된 재현과 와트의 정신적 그림 사이에서 표명하는 공통점을 정확하게 언급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그들의 공통된 장르인 초상에서 개념적인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첫째, 그들 인물초상의 모델은 장식적인 악세사리로 치장되어 있지 않고 아주 단순하고 직설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들은 공통적으로 "지적 활동을 하는 인간에게는 그 힘이 유일하게 머리에 집중되어 나오기 때문에 초상은 "정신적 창"이 되어야하고 그들의 초상에 품위와 기념비적인 측면을 주는 것은 바로 이러한 심오한 감각이다"라고 믿었다. 그러한 이유로 머리와 시선은 캐머런 부인에게 있어 중요한 소재가 된다. 왜냐면 그것들은 바로 살아 있는 인간 존재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렘브란트, 자코메티 혹은 아베돈과 같은 많은 초상작가들의 공통된 표현이 "인간의 눈은 영혼이다"라는 사실에서도 이런 상징적 표현을 이해 할 수 있다. 와트와 캐머런 부인의 세 번째 공통된 견해는 그들 초상작품에서 감지되는 감정적이고 심리적인 측면이다. 이는 작품 자체의 조형적인 미를 위한 것이 아니라 모델이 발하는 개성과 특징을 위한 작가의 감각적인 표현으로 언제나 비현실적이고 신비적이고 인물을 출현시키고 있다. 예컨대 힐과 아담슨의 인물 사진과 비교해 볼 때 힐과 아담슨의 사진은 모델의 매혹적인 표현과 생생한 제스춰를 보여주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살아있는 현실적 인물로 느끼게 하고 있다. 반면 와트와 캐머런 부인의 작품에서는 단지 단순하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구성된 비현실적 모델이 있을 뿐이다. 결국 와트와 캐머런 부인 사이의 유사성들은 적어도 예술적 문맥에서 부인의 그림적 초상사진에 미친 와트의 정신적 영향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전통적 초상에 대한 와트의 예술적 개념이 줄리아 마가렛 캐머런의 사진 작업에 직접적인 영향이라면 당시 부인이 존경한 시인 테니슨 A. Tennyson의 낭만주의 시는 그녀의 창작적 주제의 중요한 원천이 되었다. 당시 그의 시는 전라파엘주의 작품의 주된 주제로 나타났을 뿐 아니라 또한 부인의 시적이고 서술적인 많은 사진적 구상(연출)에 밑그림으로 이용되었다. 특히 연극적이고 우화적인 방식으로 나타나는 캐머런 부인의 사진 시리즈 "왕의 목가"(1875)는 정확히 테니슨의 목가적 서사시 (Idylls of the King 1872)에 대한 사진적 번역인데 이는 부인의 창작적 배경에 있어 테니슨의 문학적 영향을 잘 말해 주고 있다.
부인의 예술적 감각 형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또 다른 작가는 빅토리아 시대 화가이자 시인인 로세티 D. G. Rossetti 이다. 우선 그는 그의 신념인 "예술의 이상적 실현"이라는 초자연적인 개념에서 캐머런 부인과 그 문맥을 같이 하고 있다. 당시 대표적인 전라파엘주의 화가였던 로세티는 부인에게 "예술의 귀족성은 우화적인 구성이다"라는 개념을 알게 했고 또 이런 생각은 부인의 작품구성에 중요한 연구대상이 되었다. 그는 보다 자유롭고 신속한 기술을 구사하며 동시에 구성상의 단순성을 선호했다. 특별히 그의 그림은 관능과 불안이 섞인 심리적 묘사에 관계하는데 이는 대부분의 경우 이상적이고 전설적인 세계에서 나오는 영감적 표현으로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전라파엘주의자들이 기법상의 특징으로 갖는 세밀하고 꼼꼼하고 또한 지나치게 해부학적인 사실주의는 결코 자신의 그림에 적용하지 않았다. 사실상 캐머런 부인의 많은 사진들은 전라파엘주의의 예술적 경향을 보여주고 있음은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인데 특히 부인이 연출한 여자들과 어린이들의 예민하고 섬세한 감정과 또 그들의 얼굴 표정은 단적으로 이런 영향을 잘 말해 준다. 예술의 귀족성과 이상화된 표현은 부인의 대표적 사진으로 간주되는 "전라파엘리주의에 대한 연구"라는 부제목을 가지는 "허버트 뒤크월트 부인"(1867) 초상과 "주를 따르리... Call, I follow, I follow, let me die"(1867)라는 인물 초상이다. 여기서 모델은 성경의 마리아를 상기시키는 포즈와 구성에서 극단적으로 이상화된 귀족성을 보여 주고 있다.
캐머런 부인의 이상화된 재현은 당시 빅토리아 시대 살롱문화와 관계하고 있다. 살롱문화에서 예술은 특징적으로 귀족적이고 시적이고 그리고 낭만적인 정신을 그 토대로 하고 있고 이 시대의 예술을 "빅토리아 예술" 혹은 "귀족예술 즉 하이 아트 High Art"라고 한다. 그래서 캐머런 부인의 사진을 "귀족 예술 사진 High Art Photography"이라고 단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독자적이고 세분화된 오늘날의 예술적 경향이나 표명과는 달리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살롱 작가들은 "상호침투" 형식으로 서로 서로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캐머런 부인의 사진을 엄밀히 말해 특정한 예술적 경향으로 분류할 수 없다. 오늘날 비평가들의 연구에 의하면 줄리아 마가렛 캐머런의 독특한 사진이 비록 당대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당시 몇 몇 화가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이런 사실 또한 당시 예술의 상호침투를 잘 반증하고 있다. 부인의 이상적 재현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준 로세티의 후기작품들은 반대로 부인의 사진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당시 화가들이 그들의 초상그림(밑그림이나 모델구성이나 빛의 연구)을 위해 사진을 이용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캐머런 부인과 접촉 시기를 말하는 1865년 이전에, 로세티는 자신의 화폭에 화면을 꽉 채우는 큰 구도(close up)나 혹은 렌즈의 연촛점 같은 그림의 흐린 효과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1860년대 중반부터 그의 모델들은 화폭 공간 대부분을 차지하고 또한 사진에서만 실험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몇 몇 특별한 사진적 형태(특히 숙여진 머리, 늘어진 머리칼 등)가 그의 그림에 나타난다. 예켄대 로세티의 "꿈"(1868) 혹은 "마리 막달렌"(1877)은 분명히 이런 부인의 영향을 잘 보여 주는데 특히 후자의 그림에서 모델의 머리는 화폭의 전 공간을 가득 채우는 듯이 나타나며(캐머런 부인 사진 "마리 마돈나"(1864)와 유사) 그려진 형상의 상단 부분은 화폭의 끝 부분과 거의 맞닿아 있다. 또한 "로세티의 후기 초상그림에서 흔히 나타나는 특징은 모델의 형상을 둥글게 둘러치는 흐린 효과인데 이는 캐머런 부인 사진에서 나타나는 효과(out of focus)와 같다." 25)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와트의 초상그림(1870년대 이후)에도 부인의 사진적 요소들을 찾을 수 있다. 그의 초상 "자화상"(1879) 혹은 "사라 프렌셉"에서 보이는 큰 구도의 모델이나 머리 옆모습 혹은 정면으로 향한 어깨 등은 정확히 부인의 사진 "허버트 듀크월트"(1867)를 연상하게 한다. 이런 사실은 와트가 자신의 그림을 위해 직접적으로 몇 몇 부인의 사진을 사용했다는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확실치 않다. 왜냐면 당시 다른 화가들처럼 와트 역시 직접 모델을 촬영했기 때문이다. 캐머런 부인 사진들을 특징짓는 두 가지 큰 요소들인 "큰 구도 close up"와 "연촛점 out of focus"은 의심할 ?없이 당시 사진을 이용하는 거의 모든 화가들에게 미친 영향 중 가장 큰 것이었다. 비록 로세티나 와트의 그림에 남겨진 이러한 예술적 자국들이 널리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적어도 부인의 사진들은 이런 두 유명 화가에게 확실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분명하다.26) 결국 캐머런 부인의 독창적인 사인으로 인정되는 사진의 큰 구도와 흐린 효과는 단순한 사진적 효과와 구성으로서가 아닌 넓은 관점에서 볼 때 그림과 사진 장르 사이의 공통된 예술적 언어로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줄리아 마가렛 캐머런이 모델로부터 포착하고자 한 "이상화 된 재현"은 사실상 비현실적 시각을 위한 무모한 시도였다. 사진이 그 때까지 하나의 예술적 매체가 아닌 산업 생산물로 간주되었던 1860년대의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사진은 상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주제를 표현하는데 있어 부적절한 매체로 간주되었고 오랫동안 그림의 보조적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 했다. 결국 캐머런 부인의 사진들은 예술로서의 사진이 아닌 사진적 방법에 의한 그림이었고 또 부인도 자신을 화가라고 생각했다. 이런 사실은 헬무트 게른샤임에 의해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전라파엘주의자들은 그들의 그림에서 사진가가 되었기 때문에 실패했고 또한 줄리아 마가렛 캐머런, 라이크 프라이스, 헤리 피터 로빈슨, (아담슨이 죽고 난 다음) 후반기 사진 활동에서의 다비드 옥타브 힐 그리고 빅토리아 살롱의 많은 사진가들도 실패했다. 왜냐면 그들은 그들의 사진 실행에서 (반대로) 화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전통 귀족예술(High Art)의 정상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에서 다시 말해 화가의 관점에서 사진을 시행했기 때문이다."27) 아마츄어 사진가로서 줄리아 마가렛 캐머런은 이상적 세계(그림)를 재현하기 위해 사실주의 세계(사진)를 뛰어 넘으려고 했고 또 그것을 위해 의도적으로 사진의 흐린 효과를 그림의 효과로 이용했다. 그러나 보다 엄밀히 말해 부인의 이상적 재현에 있어 그녀의 접근 방법은 그림과 사진의 중성화된 지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면 아무리 그림이 현실의 이상화된 번역이라 할지라도 사진은 단지 현실의 복사일 뿐이기 때문이다. 캐머런 부인의 이상적 재현은 일종의 불가능한 시지프의 도전인 셈이고 초상 영역에서 이러한 재현 가능성의 재확인은 거의 한 세기를 기다려야 한다. 20세기 중반의 대표적으로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검은 두상이나 그 뒤를 잇는 리차드 아베돈의 관상학적 초상사진에서 이와 유사한 존재론적 재현을 볼 수 있지만 19세기에 살았던 캐머런 부인의 불가능한 재현은 표현적 방법에서 그들과 분명히 달리한다. 왜냐면 부인의 표현은 근본적으로 그림과 사진의 혼합적 방식에 있는데 이러한 생각은 "사진을 (있는 그대로의 순간을 포착하는 의미에서) 스넵 사진으로서가 아닌 인간의 사고와 생각을 표현하는 일종의 인공구축물"28)로 간주한 캐머런 부인의 예술적 신념에서 온다고 할 수 있다. 현실과 이상의 불가능한 닮음을 위해 줄리아 마가렛 캐머런은 보이는 현실을 이상적 세계로 옮겨 주는 즉 "이상적인 전이 la transition ideale"를 가능하게 해 주는 탁월한 표현적 도구를 발견했다. 그 도구는 의심할 바 없이 렌즈의 흐린 효과 out of focus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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